얼마 전 아무로 나미에 노래를 듣다가 문득 일본 여자 아이돌 그룹 "소녀대"가 떠올랐다. 내가 제일 처음 접한 일본 여자 아이돌 그룹이 소녀대였는데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갑자기 스타라이트 메모리 이 노레가 생각났다.
소녀대.
일본어 발음은 쇼오조타이 Shojotai (少女隊).
MBC가 주최한 1986년도 서울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스타라이트 메모리 (별빛의 추억) 이 곡으로 은상 수상.
원곡의 제목은 하레 로만스 (ハレーロマンス, Halley Romance). 구글 검색에서는 Harley Romance로 결과가 나오는데 Halley가 핼리 혜성의 그 핼리라서 Starlight memory와 맥락이 통하는 것 같다.
TV를 통해서 처음 접한 일본 아이돌 가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의 시대라서 간혹 잡지책에서 사진으로 한 두장 볼 수 있었던 JPOP 가수를 처음으로 공중파 TV를 통해서 봤다.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 우리나라 가요계에는 소녀대 같은 아이돌 걸그룹이 없었다. 그래서 상당히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참가곡도 내 취향에 맞았다. 살짝 오락실 게임 건버드2 BGM 느낌. 가요제 이후 MBC 라디오에서 이 곡을 여러 번 틀어줘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여 즐겨 들었다.
아이폰에 하레 로만스와 기타 JPOP 몇 곡을 저장했다.
소녀대를 처음 본 소감.
그 때나 지금이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머리에 큰 리본 헤어 밴드를 착용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깨가 파인 원피스에 큰 리본 헤어밴드와 귀여우면서도 이국적인 외모 그리고 발음은 시원찮았지만 가사를 전부 영어로 부른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솔직히 가창력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가요제라는 특성상 라이브로 불렀는데 노래를 잘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름 신선했지만 음악성이 대단히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소녀대를 보고 받은 문화적 충격은 일본 여자 가수 그룹이 공중파 TV에 나왔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내가 연예계 관계자도 아니고 어떤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애매하지만 8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그 당시의 일본 아이돌 주축의 JPOP을 비지니스 모델로 일부 참고는 했을지언정 JPOP이 국내 가요계를 리딩하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미국 팝음악과 같은 큰 수준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던 것도 아니고 해외여행 조차 자유롭지 않았고 일본 대중문화 자체를 금지한 시대였는데 일반 대중들이 JPOP를 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영향을 받으려면 뭔가 자주 접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물론 JPOP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몇 곡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가요계는 90년대 초반 재미교포들이 슬금슬금 유입되어 뉴 잭 스윙 같은 당시의 유행음악들을 선보였고 서태지와 아이들도 그런 연장선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녀대는 1988년 서울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KOREA라는 제목의 노래도 리메이크 버전으로 발표했고 다시한번 국내 TV에서 출연하여 노래를 부르는 무대를 선보였다.
나 말고도 그 시대의 소녀대를 기억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소녀대 스타라이트 메모리를 좋아했지만 멤버 개개인의 이름까지 파악하는 정도의 팬심은 없었다.
소녀대의 노래 중에서 하레 로만스, 커버곡인 Daydream believer, Can't take my eyes off you 이 세곡을 가장 좋아했다.
특히 Can't take my eyes off you 이 곡은 1967년 Frankie Valli가 부른 원곡인데 영화 Deer Hunter에서 주인공들이 당구를 치면서 따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The Deer Hunter - Can't Take My Eyes off You (youtube.com)
그 영화의 OST에 포함된 곡은 아니었고 1997년 영화 컨스피러시에서 OST 삽입곡으로 사용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곡이다.
디어헌터 OST에는 Cavatina라는 유명한 기타 연주곡이 있다.
아무튼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가 일본어였던 관계로 반에서 JPOP을 몰래 듣는 학생들이 몇명 있었다. 나도 그 때 소녀대 외에 Wink를 알게 되었고 윙크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 날 학교에서 수업을 일찍 마치고 단체영화 관람을 한다고 하여 무슨 영화를 보러 가는지도 모르고 대한극장에 갔는데 그 때 상영된 영화가 "마루타 (흑태양 731)"이었다.
이 영화는 정말로 지금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구글 검색을 하는 것 조차 힘들 만큼의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영화로 인한 충격으로 한동안 JPOP을 즐기지 못했던 적이 있다.
나에게 소녀대는 스타라잇 메모리, 윙크, 디어헌터, 마루타로 이어지는 마인드 맵을 그리게 하는 그런 존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