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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한국 고전영화 추천 <수업료> (1940)

by 버니건반 2024. 7. 24.

한국영상자료원이 유튜브에 공개 게시한 고전영화 <수업료>를 보았다. 이미 몇 년 전에 본 작품이지만 이제서야 짧은 감상 후기를 정리하여 올린다.

 

일단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다.

 

영화 수업료, 김신재 배우

 

제목 그대로 수업료를 제 때 납부하지 못해 마음 고생하는 소학교 남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내용이며 1940년도에 개봉하여 82년이 지났음에도 일부 장면에서는 눈물이 핑 도는 그런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시청을 적극 추천한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시청 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스포일러 내용 누설은 없다. 이 글은 아마도 수업료를 감상한 분들이 검색으로 찾아서 읽지 않을까 싶다.

 

영화 수업료 (1940) 제작 배경.

 

경성일보가 주최한 소학생 작문 공모에서 입선한 어린이의 수기가 원작이며 이 원작은 조선 총독상을 받았다. 전남 광주 소학교 4학년 우수영 군의 작문. 소학교는 오늘날의 초등학교.

 

원작 자체가 뛰어난 작문이다 보니 영화화가 될 수 있었다. 이 원작을 일본인 시나리오 작가가 각색을 하고 다시 소설가 유치진이 일부 대사를 다듬고 최종적으로는 최인규 감독이 연출을 했다.

 

이 영화는 약 70여년 만에 중국전영자료관이 소장한 한국 영화목록에서 발견되었고 원본 필름 프린트 전체가 유실되지 않고 남아 있어 그 프린트의 복제본을 입수하여 보정 작업 후 공개된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 영화를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 후 수립한 만주 괴뢰국에서도 상영한 것 같다. 만주에서 상영 후 남은 필름이 계속 보관된 것으로 보인다. 만주는 중국의 동북 지역으로 연변 지역 등이 포함되는데 일제가 세운 만주국으로 조선인 및 일본인들이 많이 이주를 하였다.

 

만주국 초기 집정관은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푸이.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푸이가 주는 금시계와 은사품을 하사 받았다. 박정희 졸업 당시에는 푸이가 직접 졸업식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료>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영화관에서 개봉하여 상영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촬영을 마친 후 후반작업을 위해 내지 (일본 본토, 한반도는 외지)로 보냈는데 운송 도중 영화 필름이 분실되는 소동이 있었다. 분실된 필름을 다시 찾아 후반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노이즈 마케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 사본 없이 원본을 보낸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는 필름 프린트 복제 비용도 꽤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내선일체에 부합하는 영화.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조선영화 검열을 통해 민족의식 고취나 반일적 내용의 영화가 상영될 수 없게 검열제도를 운영했는데 <수업료>는 검열 수수료가 면제된 최초의 조선영화다. 검열 수수료가 면제 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검열할 내용이 없다는 것과 다름없다. 후에 검열 수수료가 면제된 영화들은 대부분 일본군에 자원 입대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영달이네 월세를 독촉하는 조선인과 약값을 보태주는 일본인 교사의 모습이 대비된다. 

 

<수업료> 흥행성적.

 

흥행 기록 자료는 공식적으로 남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봉 후 기자와 평론가들이 호평을 하였고 만주국에서 까지 영화가 상영된 것으로 보아 관객동원 및 흥행실적이 높았던 작품이 아닐까 추정해 볼 수 있다.

 

<수업료> 출연진.

 

감독 : 최인규, 방한준

일본인 교사 : 스스키다 겐지

우영달 : 정찬조

안정희 : 김종일

영달의 조모 : 복혜숙

영달의 친구 누나 귀란 : 김신재

영달의 모친 : 문예봉

영달의 부친 : 김한

 

김신재.

 

1919년 생. 극장 사무원으로 일하다가 최인규 감독과 만나 배우활동을 시작. 최인규 감독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지만 남편 최인규는 한국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가 실종되었다. 춘원 이광수 등과 같은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83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버지니아 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본어가 가능하여 일본어 대사도 능숙하게 잘 한다.

 

서글서글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며 조강지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결혼한 여배우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를 업고 종로일대를 다녔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인 박남옥 감독 (1923년 생)은 김신재의 열렬한 팬이었다. 결국 영화사에 입사하여 김신재와 친분을 맺으며 영화계에서 경력을 쌓다가 1955년 작 <미망인>을 발표한다.갓난 아기인 자신의 딸을 등에 업고 큐사인을 외쳤다고 한다.

 

한국영화 서울의 휴일 (1956)을 보고 김신재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게 남아 그 분이 출연하신 영화를 좀 더 찾다가 <수업료>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문예봉.

 

영화 후반에 잠시 등장하는 영달의 엄마가 바로 문예봉 배우 (1917년 생). 한국 영화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여성배우이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한국전쟁 이후에는 북한에서 쭉 배우활동을 이어갔다. 60년대 부터 70년대 후반까지 자취를 감췄다가, 숙청 또는 좌천으로 추정.

 

1980년도 작품인 북한영화 <우리 윗집 문제>에 출연. 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검색하여 볼 수 있었다.

 

복혜숙.

 

1904년 생. 영달의 할머니.

 

정찬조.

 

1928년 생. 우영달 역을 맡은 아역배우. 이미 고인이 되셨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영화 <친구>에서 교사한테 체벌 당하고 머리 숙여 인사 안 했다고 한대 더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수업료>를 보면 안정희가 칠판에 수원의 위치를 그리고 나서 들어 갈 때 군복을 입은 일본인 교사에게 머리를 숙여 목례를 한다. 이것은 일제의 잔재.

 

유튜브에서 볼 때 자막 켜고 보기.

 

오래 전의 고전영화라서 지금의 말투와는 차이가 있어 음성으로만 들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므로 자막을 켜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수업료> 댓글 및 외국인들 반응.

 

사실 이 글은 2년 전에 원노트에 작성한 글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영화 <수업료>를 다시 봤는데 일제시대를 찬양하는 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 있어 황당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봤을 때는 댓글이 채 30개도 달려있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1,700여개의 댓글을 볼 수 있다.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일본어 댓글 중에서는 이 영화가 오늘날의 한국 영화의 저력으로 이어진 것 같다는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한글 댓글 중에서는 일제시대를 찬양하고 근대화 교육을 해줬다느니 그런 댓글이 많아서 말문이 막혔다.

 

영화를 제대로 보기나 한 것일까? 일단 초등학교도 수업료를 제 때 납부하지 못하면 수업을 받기도 어려웠던 시대인데 그게 무슨 일제 근대화의 혜택인가?

 

내선일체와 군국주의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문화정책으로 조선총독부가 제작을 지원한 영화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왕조국가체제를 무너트리고 공화국을 세우지 못한채 외세의 지배를 통해 왕조국가에서 근대국가로 넘어 온 부작용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